프랑스 샴페인 지역, 마른(Marne) 강이 굽이치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Venteuil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유명 샴페인 하우스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곳입니다.

이 마을에 Cyril Mignon이라는 사람이 삽니다.

그는 자신을 "실험실의 연구원"이라 부릅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정말 과학자처럼 일합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하나하나 기록하며 오래 기다립니다.

그의 실험실은 조금 특이합니다.

최첨단 장비는 없습니다. 대신 오래된 지하 저장고가 있습니다. 미로처럼 꺾이는 좁은 복도,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나타나는 작은 방들.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좋은 구조입니다.

대형 하우스의 지하 저장고를 떠올려 보세요. 수 킬로미터의 웅장한 터널, 관광객이 줄지어 걷는 넓고 반듯한 공간. Mignon-Boulard의 지하는 정반대입니다. Cyril은 이곳을 "지하들(sous-sols)"이라 복수형으로 부릅니다. 하나의 큰 저장고가 아니라, 수많은 작은 공간이 엉킨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걸 단점이라 여길지 모릅니다. Cyril의 눈에는 다르게 보입니다. 구석마다 온도가 조금씩 다르고 습도가 다르고 공기의 흐름이 다릅니다. 같은 와인을 넣어도 숙성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미로 같은 지하. 그에게는 수십 개의 서로 다른 실험실인 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지하(sous-sol)"는 "땅속 토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Cyril에게 이 두 의미는 따로 놀지 않습니다.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의 포도밭은 모두 6.42헥타르. 그런데 이 땅이 49개의 작은 구획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잘게 쪼갰을까요.

이 지역의 토양이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몇 걸음만 옮겨도 발밑의 흙이 달라집니다. 어떤 곳은 석회질이 강하고 어떤 곳은 점토가 많고 어떤 곳은 모래가 섞입니다. 49개의 구획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49개의 땅입니다.

49개의 서로 다른 땅에서 자란 포도가, 미로 같은 지하의 여러 구석으로 흩어져 들어갑니다. 땅 아래의 다양성이 또 다른 땅 아래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냅니다.

Cyril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와인은 언제 출시하나요?"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준비됐을 때요."

빨리 팔아야 한다는 압박, 시즌에 맞춰야 한다는 조급함. 그런 것들은 이 지하의 고요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Cyril은 자신의 저장고를 "창조의 은신처"라 부릅니다. 이곳에서 와인은 그저 보관되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변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와인이 스스로 준비됐다고 말할 때, 비로소 빛을 봅니다.

시간을 사람이 정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 우리가 바다에서 하려는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확신했습니다. Mignon-Boulard야말로 뮤즈드마레의 첫 파트너라고.

Cyril의 샴페인은 이미 두 번의 "땅 아래"를 지납니다. 첫 번째는 포도나무가 35년 동안 뿌리를 뻗은 Venteuil의 흙 속. 두 번째는 미로 같은 지하 저장고의 어둠 속.

뮤즈드마레는 여기에 하나를 더합니다. 이번에는 땅 아래가 아니라 바다 아래, 한국 남해 수심 30미터입니다.

땅속에서 태어나, 저장고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샴페인. 땅 아래에서 시작해 바다 아래로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Venteuil의 지하 저장고와 남해의 해저. 지도 위에서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랄 만큼 닮았습니다.

둘 다 사람의 조급함이 끼어들 틈이 없는 고요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둘 다, 시간이 천천히 일하는 곳입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다릅니다. 지하 저장고의 시간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병을 열기 전에는 그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적어두지 않았습니다. 300년 넘게, 샴페인의 시간은 늘 그렇게 믿음으로만 남았습니다.

바다는 다릅니다. 수온은 계절을 따라 오르내리고 해류는 날마다 바뀝니다. 우리는 그 하루하루를 적을 수 있습니다. 그날의 수온과 해류, 병에 내려앉는 소금의 자국까지. 땅의 연구원이 평생 기록해온 습관을, 이제 바다가 이어받아 씁니다.

Cyril Mignon은 말합니다. 와인은 "그 순간이 왔을 때" 세상에 나온다고. 우리는 그 순간을 바다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0미터 깊이의 어둠 속에서 샴페인은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Venteuil 지하의 고요가 남해 바닷속의 고요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번에는 날마다 기록됩니다.

땅 아래에서 바다 아래로. 프랑스의 시간에서 한국의 시간으로.

그리고 언젠가, 준비가 됐을 때. 천천히 물 위로 올라옵니다.

바다의 시간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