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샴페인은 보통 지하 셀러에서 잠듭니다.
샹파뉴의 석회질 셀러, 연중 온도가 일정한 서늘한 어둠 속에서 수년을 고요히 머뭅니다. 300년 넘게 이어진 검증된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길 대신 바다를 택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처음부터 바다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한 어촌 마을에서 본 풍경이 있습니다.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오르던 순간, 손에는 전복과 성게, 해삼이 들려 있었습니다. 바다가 오래 품었다가 마침내 내어준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바다는 시간을 품는 곳이구나. 그리고 그 시간을 아무 말 없이 고스란히 기억하는 곳이구나.
지하 셀러는 시간을 숨깁니다.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병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하우스의 이름과 '잘 익었을 것'이라는 믿음뿐입니다.
바다는 다릅니다. 그곳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남길 수 있습니다. 수온과 해류, 그날의 흔들림까지. 우리가 바다를 택한 이유는 그 맛이 아니라, 그 시간을 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고향
샴페인에는 '떼루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포도가 자란 땅의 토양과 기후, 지형. 그 모든 것이 한 병의 와인에 배어든다는 믿음입니다. 샴페인을 샴페인으로 만드는 것은 샹파뉴의 땅입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질문을 하나 더했습니다. 태어난 땅이 하나의 고향이라면, 시간을 보낸 자리도 또 하나의 고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샹파뉴가 병을 빚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바다가 그다음의 시간을 씁니다. 수심 30미터, 빛이 닿지 않는 심연에서 병은 일 년을 보냅니다. 우리는 그동안 바다가 남기는 말을 받아 적습니다. 매일의 수온과 해류, 병에 내려앉는 따개비와 소금의 자국까지.
돌아온 병에는 얼룩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결함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바다가 일 년 동안 쓴 원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개의 고향'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샹파뉴의 땅에서 태어나, 한국의 바다에서 시간을 보낸 샴페인.

경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돔 페리뇽이나 크루그와 우열을 다투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300년 역사의 메종들이 쌓아 올린 세계는 이미 완결된 우주입니다. 우리는 그 곁에 작은 행성 하나를 띄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름으로 증명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기록으로 증명됩니다. 헤리티지는 주장하는 것이고, 기록은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쌓아 온 역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병이 보낸 시간을 적어 두기로 했습니다.
자기가 살아낸 시간의 기록을 병과 함께 건네는 샴페인. 세상에 아직 없는 그것이, 뮤즈드마레가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곧 첫 번째 병들이 바다로 향합니다.
프랑스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병들이 한국의 심연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립니다. 바다가 허락하는 시간만큼. 그 시간의 길이는 우리가 정하지 않습니다. 바다가 정합니다.
이 여정을 이곳에 적어 두려 합니다. 바다의 일지, 매일의 측정, 그리고 마침내 세상에 나올 첫 번째 기록까지. 느리지만 깊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두 개의 고향'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샹파뉴의 땅이 어떻게 한 병의 샴페인을 빚는지, 그리고 한국의 바다가 그 위에 어떤 시간을 적어 내려가는지.
바다의 시간을 기다리며.


